고구려의 부활 발해
망국의 한
발해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230여년간 현재의 중국 길림성 ㆍ 흑룡강성 ㆍ 요령성과 북한 ㆍ 러시아 지역을 기반으로 남쪽의 신라와 남북국(南北國)을 이룬 나라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수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스스로 이동하였거나 강제로 이주되었다. 발해를 세운 고구려의 장수 대조영(大祚榮)도 당나라에 의해 현재의 요령성 조양(朝陽)인 영주(營州)지역으로 강제로 옮겨가 살았다.
건국의 꿈을 품고
696년 영주(營州)에서는 영주도독 조홰(趙날개 치는 소리 홰)의 폭정에 항거하여 거란인 이진충(李盡忠) ㆍ 손만영(孫萬榮)이 난을 일으켰다.
그들은 순식간에 유주(幽州)까지 점령하였다. 영주에 강제로 사민되었던 대조영(大祚榮)은 이 틈을 타고 무리를 이끌어 요하를 건너 요동에 이르렀다.
당나라에서는 이해고(李楷固)의 군대를 파견하여 추격하였다. 대조영(大祚榮)은 천문령(天門嶺)에서 이들을 대파하고 현재의 길림성 돈화시에 있는 동모산(東牟山)에 이르러, 698년 발해를 건국하였다.
고구려 계승국 발해
발해의 국가적 성격은 무왕과 문왕대에 명확히 드러난다. 제2대 무왕(武王) 대무예(大武藝)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의 옛 땅을 소유하고 부여의 풍속을 계승하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발해가 역사적ㆍ문화적으로 부여-고구려에 뿌리를 두고 있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발해는 '고려'라는 명칭도 사용하였다. 758년 일본에 사신으로 떠난 양승경(楊承慶)에 대해서 일본에서는 '고려사'라고 불렀고,
그가 지닌 국서에서는 '고려국왕 대흠무가 말하노니'라고 하여,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대조영(大祚榮)이 건국한 발해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고구려와 부여를 계승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