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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흔적을 찾아서
군사제도
발해의 군사제도는 『신당서(新唐書)와 『속일본기(續日本紀)』 등 발해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사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군사제도의 완비과정은 건국초기 확장된 영토범위에 행정제도를 마련한 시기, 10위 설치시기, 왕종우(王宗禹)가 발해로 사신 다녀온 이후 발해의 군제에 대해서 보고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유취국사(類聚國史)』를 보면, 건국 초기부터 도독(都督)이나 자사(刺史)를 파견하였다. 또한 737년에 일본에 파견된 서요덕(胥要德)이 충무장군(忠武將軍)이라는 정4품상의 품계를 지니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는 이미 산계(散階)가 형성되었음을 알게 한다. 발해가 당나라를 모방하여 부병(府兵)을 설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발해의 무관(武官) 가운데 자사(刺史)ㆍ낭장(郎將)ㆍ과의도위(果毅都衛)ㆍ별장(別將) 등이 있으므로 발해에서도 부병제(府兵制)와 관련된 제도가 마련되어 시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발해의 10위 제도>
10위 | 좌맹분위 | 대장군, 장군 | 품계및 동작 | 영달장군 |
---|---|---|---|---|
우맹분위 | 대장군, 장군 | 충무장군 | ||
자웅위 | 대장군, 장군 | 운녹장군 | ||
우웅위 | 대장군, 장군 | 보국장군 | ||
자비위 | 대장군, 장군 | 귀덕장군 | ||
우비위 | 대장군, 장군 | 자수대부 | ||
남좌위 | 대장군, 장군 | 청수대부 | ||
남우위 | 대장군, 장군 | 헌사대부 | ||
북좌위 | 대장군, 장군 | 광간대부 | ||
북우위 | 대장군, 장군 | 상주국, 개국공 개국남, 개국자 |
중앙관제
발해 문왕대에는 중앙관제를 비롯한 군사제도가 정비되었다. 발해의 중앙기구 출현은 점진적인 발전과정을 거쳤다. 즉 건국초기의 조직과 기구의 설치상황은 확인할 수 없지만, 고왕(高王)이 스스로를 '진국왕(振國王)'이라고 불렀고, 또한 그 아들을 '계루군왕(桂婁郡王)'으로 책봉하였으므로 분명 이에 상응하는 조직의 체계가 갖추어 졌을 것이다. 이후 무왕(武王)과 문왕(文王)시기 초에는 강역이 확장되고 국가 조직이 강화된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전례(前例)에 따라 운영되었을 것이다. 국가조직으로는 3성 6부 1대 7사 1원 1감 1국을 두어 전국적으로 통치하였다. 문왕은 정령(政令)을 집행하는 정당성(政堂省), 나라의 정사를 심의하고 결정하는 선조성(宣詔省), 정령(政令)을 기초하고 심의하는 중대성(中臺省)의 3성과 충부(忠部) ㆍ 인부(仁部) ㆍ 의부(義部) ㆍ 지부(智部) ㆍ 예부(禮部) ㆍ 신부(信部) 의 3성 6부를 설치하였다. 그밖에 관리를 감찰하는 중정대(中正臺), 외국사절을 접대하는 사빈시(司賓寺) 등 7시를 만들고, 국가의 동량을 양성하는 주자감(투구 주子監)을 세웠다. 문서를 관리하는 문적원(文籍院)도 만들어, ‘해동성국(海東盛國)’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발해의 중앙제도>
10위 | 선조성 | 좌상, 좌평장사, 시중, 좌상시, 간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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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성 | 우상 ,우평장사, 내사, 조고, 사인(舍人) | ||||
정당성 | 대내상, 좌사정, 우사정, 좌윤, 우윤 | ||||
좌6사 | 충부 | 경 | 1대 | 중정대 | 대중중, 소정 |
인부 | 경 | 1원 | 문적원 | 감, 소감, 령, 소령 | |
의부 | 경 | 1국 | 항백국 | 상시 | |
작부 | 낭중, 원외 | 1감 | 주자감 | 감, 장 | |
창부 | 낭중, 원외 | 7시 | 태상시 | 경 | |
선부 | 낭중, 원외 | 사빈시 | 경 | ||
우6사 | 지부 | 경 | 대농시 | 경 | |
예부 | 경 | 신장시 | 령, 승 | ||
신부 | 경 | 사선시 | 령, 승 | ||
융부 | 낭중, 원외 | 전중시 | 대령 | ||
계부 | 낭중, 원외 | 종속시 | 대령 | ||
수부 | 낭중, 원외 |
행정제도
발해는 중앙에서 지방까지 경(京) ㆍ 부(府) ㆍ 주(州) ㆍ 현(縣)을 두는 제도를 실시하였다. 발해의 행정제도, 즉 국가의 기틀은 3대 문왕대에 완성되었다. 발해는 4번 천도하였는데, 그중에서 3번이 문왕대에 이루어졌다. 문왕은 새로 복속된 영토에 천도를 통하여 전 국토에 5경을 설치하였는데. 이것은 통치전략을 강화하고 지역의 통제가 편리하게 한것이다. 발해는 5경 이외에 지방에는 15부 62주를 설치하고 자사와 도독을 파견하여 통치토록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락에 수령(首領)을 임명하여 통치하였다. 지방은 도독(都督)과 자사(刺史)에 의해 통치하였는데, 이것은 각 부락마다의 풍속에 맞추어 통치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밖에 62주 가운데는 속주(涑州)·영주(초나라 서울 영州)·동주(銅州) 등 3개의 독주주(獨奏州)가 있다. 독주(獨奏)의 의미는 직할이라는 의미로서 모든 업무는 중앙에만 전달한다. 독주제도는 문제가 많은 지역에 설치하여 발해왕실에서 직접 통제함으로서 완충지대로 삼아 통치하기에 편리토록 하였다. 통치철학과 사상적으로는 유교를 받아들여 국가의 통치이념을 삼았고, 불교를 통해서는 백성들의 통합을 도모하였다. 역사적으로는 고구려의 '천손(天孫)'의식을 표방하여 국가의 정통성을 세웠는가 하면, 대외적으로는 대왕(大王) ㆍ 성인(聖人) ㆍ 황상(皇上)이라고 불러 황제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바로 문왕대는 역사적 ㆍ 문화적 ㆍ 영토적 성장과 사상적 통합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발해의 행정제도>
5경 | 15경 | 5도 | 62주 | 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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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上京) | 용천부(龍泉府]) | 龍(용) ㆍ 湖(호) ㆍ 渤(발) 3주 | 숙신의 옛 땅[肅愼故地] | |
중경(中京) | 현덕부(顯德府) | 盧(노) ㆍ 顯(현) ㆍ 鐵(철) ㆍ 湯(탕) ㆍ 榮(영) ㆍ 興(흥) 6주 | ||
동경(東京) | 용원부(龍原府) | 일본도(日本道) | 慶(경) ㆍ 鹽(염) ㆍ 穆(목) ㆍ 賀(하) 4주 | 예맥의 옛 땅[濊貊故地] |
남경(南京) | 남해부(南海府) | 신라도(新羅道) | 沃(옥) ㆍ 晴(정) ㆍ 椒(초) 3주 | 옥저의 옛 땅[沃沮故地] |
서경(西京) | 압록부(鴨록府) | 조공도(朝貢道) | 神(신) ㆍ 桓(환) ㆍ 豊(풍) ㆍ 正(정) 4주 | 고구려의 옛 땅[高麗故地] |
장령부(長嶺府) | 영주도(營州道) | 瑕(하) ㆍ 河(하) 2주 | ||
부여부(扶餘府) | 거란도(契丹道) | 扶(부) ㆍ 仙(선) 2주 | 부여의 옛 땅[夫餘故地] | |
막힐부(막힐府) | 막(막) ㆍ 高(고) 2주 | |||
정리부(定理府) | 定(정) ㆍ 潘(심) 2주 | 읍루의 옛 땅[읍婁故地] | ||
안변부(安邊府) | 安(안) ㆍ 瓊(경) 2주 | |||
솔빈부(率賓府) | 華(화) ㆍ 益(익) ㆍ 建(건) 3주 | 솔빈의 옛 땅[率賓故地] | ||
동평부(東平府) | 伊(임) ㆍ 蒙(옹) ㆍ 차(차) ㆍ 黑(흑) ㆍ 比(비) 5주 | 불열의 옛 땅[拂涅故地] | ||
철리부(鐵利府) | 廣(광) ㆍ 汾(분) ㆍ 蒲(포) ㆍ 海(해) ㆍ 義(의) ㆍ 歸(귀) 6주 | 철리의 옛 땅[鐵利故地] | ||
회원부(懷遠府) | 達(달) ㆍ 越(월) ㆍ 懷(회) ㆍ 紀(기) ㆍ 富(부) ㆍ 福(복) ㆍ 美(미) ㆍ 邪(아) ㆍ 芝(지) 9주 | 월희의 옛 땅[越喜故地] | ||
안원부(安遠府) | 寧(영) ㆍ 미(미) ㆍ 慕(모) ㆍ 常(상) 4주 | |||
독주주(獨奏州) | 영(영) ㆍ 銅(동) ㆍ 涑(속) 3주 |
영토팽창
천도과정
발해는 742년 무렵에 건국의 터전인 구국(舊國)에서 중경(中京)으로, 756년 중경(中京)에서 상경(上京)으로, 785년 상경(上京)에서 동경(東京)으로, 794년 동경(東京)에서 상경(上京)으로 4번 수도를 옮겼다. 그러나 정치 ㆍ 경제 ㆍ 사회 ㆍ 문화의 중심인 수도를 빈번하게 옮긴 목적이 무엇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4번의 천도 가운데 5대 성왕 재위기간(794년)에 동경(東京)에서 상경(上京)으로 환도(還都)한 것을 제외하면 그 나머지는 모두 3대 문왕대(737~793)에 이루어졌다. 이것은 바로 천도가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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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4-04-26